더 강력한 적을 이기기 위한 전략 – 나폴레옹 패한 이야기

더 강력한 적을 이기기 위한 전략은 내 자신이 적보다 강해져야 합니다. 이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나보다 강한 적을 적개심을 보이지말고, 내 힘을 키우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며 서서히 성장을 해야하는데요.

이에 대한 역사적 사례가 있습니다.

나폴레옹과 메테르니히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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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과 메테르니히 이야기

1805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울름 전투와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를 격파합니다. 이 두번에 걸친 전쟁 후 맺은 조약으로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영토를 분할하여 이탈리아와 독일에 편입시킵니다.

더 강력한 적을 이기기 위한 전략 나폴레옹
울름 전투
더 강력한 적을 이기기 위한 전략 아우스터리츠 전투
아우스터리츠 전투
아우스터리츠 전투 2
아우스터리츠 전투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가 약해져 주변국에 종속되는 동시에 유럽 중앙으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이 되어주기를 원합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 3
나폴레옹의 근위 기마대

이때 베를린 소재의 프로이센 궁정의 오스트리아 대사로 있던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를 프랑스 주재 대사로 보내줄 것을 오스트리아에 요구합니다.

당시 메테르니히는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이고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며, 보수적 정치 성향을 지녔습니다.

메테르니히 1

나폴레옹은 메테르니히와 같은 유서깊은 가문의 귀족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두고 싶어하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처음에는 메테르니히를 차갑게 대했지만, 여러 번 회의를 하면서 메테르니히의 매력을 느끼고 자신의 추종자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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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은 계속적인 만남으로 친구 사이로 발전을 하였고, 나폴레옹의 여동생과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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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린 보나파르트
카롤린 보나파르트, 향후 기병대 뮈라와 혼인
기병대 뮈라
기병대장 뮈라 – 기병대 지휘로 실전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던 돌격대 대장이라네요.

이때 메테르니히는 나폴레옹의 사생활에 대한 정보와 항후 조세핀과의 불만족 관계와 같은 정보를 얻게 됩니다.

조세핀 드 보아르네
조세핀 드 보아르네

1809년 오스트리아는 과거 프랑스와 설욕전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에게 대패를 하게 되고, 군대는 해산되고 정부조직은 와해됩니다.

아스페론 에슬링 전투
아스페른-에슬링 전투는 1809년 5월 21일에서 5월 22일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빈(Vienna) 근처에서 나폴레옹이 도나우 강(Danube)을 건너기 위해 시도한 전투

이때 오스트리아의 외무장관에 메테르니히를 앉힙니다.

몇달 후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황제의 딸에게 청혼을 받고, 왕실과의 결혼으로 더욱 탄탄한 동맹을 맺을 전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뒤 조세핀과 이혼 후 황녀와 결혼을 합니다.

마리 루이즈
나폴레옹 1세의 항후 마리 루이즈

나폴레이옹은 식민지 출신인 그가 유럽 황실 가문의 딸과 결혼을 한다면 그 가문의 일원으로 편입된다는 의미가 있기에 자신의 전통성을 위해 이 결혼을 전략적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1812년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침공합니다. 이 때 메테르니히는 나폴레옹 휘하에 있는 3만명의 오스트리아 병사로 군대를 조직하도록 허용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 1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의 군대 재정비는 황실의 일원이 된 자신에게도 좋은 방양으로 작용하리라 기대하여 허용을 해주게 됩니다.

그 후 러시아 침공은 프랑스의 대패로 마무리가 되고, 프랑스의 군대 1/10이 전사를 하게 됩니다.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
러시아 원정 나폴레옹

이때 메테르니히는 프랑스와 유럽 제국 사이의 조정자 역할을 자청했고, 나폴레옹은 이번 패배로 제정비할 시간이 필요하여 승락을 하게 됩니다.

나폴레옹은 메테르니히와의 관계 그리고 오스트리아 황실의 일원이므로 프랑스에 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 예측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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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봄 협상이 결렬되자 새로운 전운이 온 유럽을 뒤덮습니다. 러시아, 프로이센, 영국, 스웨덴의 강력한 동맹군과 프랑스의 싸움이 될 양상이었죠.

메테르니히 2
가운데 : 메테르니히, 빈 회의

당시 오스트리아 군대도 상당히 힘을 길러둔 상태였기에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의 힘을 빌리고자 하였습니다.

프랑스 동맹국

그런데 메테르니히가 비밀리에 동맹국 측에 섰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됩니다.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황제가 사위의 나라 프랑스를 배반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메테르니히를 만나기 위해 회의에 참석합니다. 이때 메테르니히는 냉랭한 어조로 나폴레옹에게 강화조건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전쟁으로 획득한 영토는 모두 반환할 것을 요구 합니다.

라이프치히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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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르니히는 자신의 조국 오스트리아의 이익과 유럽의 안정을 위해 철저히 자신을 위장해왔던 것이죠.

라이프치히 전투 1814
라이프치히 전투

그 뒤 오스트리아는 동맹국 편에 섰고, 실제적으로 동맹 군대의 선봉이 되었으며, 1814년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뒤 나폴레옹은 지중해의 엘바섬으로 유배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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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 파리 입성하는 러시아군
파리에 입성하는 러시아군, 1814년

메테르니히는 나폴레옹의 군대를 힘으로 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나폴레옹이 약해질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내 힘을 키워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경쟁이고 매일이 전쟁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지금의 나를 강하게 해주는 전략서라고 생각이 드네요.

개인적으로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제가 거래를 하고 싶던 기업이 있었는데, 고객사와 기존 거래처가 굉장히 오랫동안 거래를 해왔고, 담당자와 영업의 관계성이 좋았었죠.

무슨 심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거래처는 꼭 내 고객사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작은 거래부터 하나씩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아주 작은 사건이 터지면서 저에게 기회가 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거래량을 조금씩 늘리면서 담당자와 관계성을 좋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기존 영업과도 우린 욕심이 없다라는 식으로 안심을 시켰고요.

그해 가장 큰 거래가 있었는데, 이때부터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거래를 하면서 모든 주변의 상황을 제 위주로 되게 하나씩 그려나갔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이 고객사의 납품을 저희쪽이 하는 판을 만들었었죠.

당시의 저의 전략은 일단 살아남고, 시간에 투자를 하여 기회를 보자였습니다.

위 나폴레옹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예전 생각이 나서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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