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역사스페셜 – 랭턴박사의 역사추적 2부, 유리구슬의 대항해 – 역사 자세히 알아보자





– 신라 인면유리구슬 속 얼굴은 누구인가?
신라 인면유리구슬 속 얼굴을 두고 학계에서는 갖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일본의 고미술사학자 요시미츠 츠네오의 주장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구슬 속 얼굴이 로마황제라는 것인데 그동안 정설로 굳어져오던 중앙아시아 유목민이라는 설과는 대치되는 주장이다. 인면유리구슬 속 얼굴의 정체는 고대신라 문명교류의 비밀을 풀 열쇠다. 과연 유리구슬에 새겨진 얼굴은 누구를 형상화한 것일까?

– 신라 인면유리구슬은 불교의 세계를 담고 있나?
인면유리구슬의 원산지로 밝혀진 인도네시아 자바로 향한 랭턴 박사는 고대 힌두교 유적인 프롬바난 사원의 브라흐마 신상에서 결정적 단서를 찾아낸다.
신상에는 브라흐마의 4개의 얼굴, 그리고 브라흐마의 이동 수단인 함사(hamsa)라 불리는 새가 조각돼있다. 인면유리구슬에 새겨진 4개의 얼굴과 하얀 물새는 힌두교 신 브라흐마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인도네시아의 고도 족자카르타(Djokjakrta)의 한 불교 사찰에서도 인면유리구슬 속 문양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법당 앞 월장석 바닥에는 부처의 일대기가 그림으로 표현돼 있다. 해탈을 의미하는 새인 함사(hamsa), 사원에 피어있는 부처님께 공양할 때 바치는 프랜지파니라 불리는 꽃은 인면유리구슬에 그려진 꽃, 새와 일치한다. 더군다나 얼굴의 미소, 목에 그려진 3개의 주름은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승려들의 주장까지 나왔다. 불교와 힌두적 요소가 융합하며 공존했던 고대 자바섬. 신라 인면유리구슬은 불교의 세계를 담고 있는 것일까?

– 동서양을 잇는 바다의 실크로드, 유리구슬의 대항해가 시작되다!
동자바산 인면유리구슬은 어떻게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신라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일까? 이동 루트를 추적하기 위해 인도로 향했다. 인도 남부의 폰티체리에서 3km 떨어진 아리카메두는 한때 로마제국과 교역이 활발했던 국제무역항이다.
마을 곳곳에서 로마 동전과 로마 그릇 등이 출토됐다. 또한 교역품을 쌓아뒀던 곳으로 추정되는 창고 등이 발견되면서 고대 로마와 활발한 교류가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로마산 유리구슬과 함께 불투명한 인도-퍼시픽 계열의 작은 유리구슬들도 출토됐다. 이는 로마제국이 보유한 유리구슬의 원천제작기술을 인도의 장인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형식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와 동일한 형태의 구슬들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 동남 아시아와 중국 광저우 등은 물론 한반도 서남해안 지역에서 대규모로 출토되기도 했다. 고대 신라인들은 바닷길을 통해 세계와 교역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 유라시아 동쪽 끝 신라, 바닷길을 통해 세계와 만나다
울산 마골산 자락에는 신라 시대의 고찰이 자리하고 있다. 진흥왕 때 인도의 아쇼카왕이 불상을 실어 보낸 배 한 척이 이 일대에 도착한다. 진흥왕은 그 배가 닿은 곳에 인도 서축과 대칭되는 동쪽 불국토라는 뜻을 담아 동축사라고 이름 지은 사찰을 세운다. 울산은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가장 가까운 최적의 입지조건을 가진 고대 무역항이었다. 기원전 1세기, 초원의 길보다 더 이른 시기에 바다의 실크로드가 열렸다. 고대 바닷길은 유리구슬을 비롯한 고대 문명을 실어 날랐다. 로마제국과 인도, 동남아시아와 중국 광저우를 거쳐 극동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촘촘히 이어주는 해양 네트워크였다. 유라시아 동쪽 끝에 위치한 신라는 북방기마문화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해양 실크로드를 통해 남방 해양문화를 받아들였던 세계와 호흡하고 교류한 역동적인 나라였다.

신역사스페셜 93회 – 랭턴박사의 역사추적 2부, 유리구슬의 대항해 (2012.1.19.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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